P40
그는 평생 귀찮음과 싸워왔다. 망연하게 창문 너머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학생들은 그가 무슨 심오한 학술적 사색에 잠겨 있는 줄 안다. 그렇지 않다. 귀찮음과 싸우고 있을 뿐이다. 귀찮음과의 한판 승부, 그건 심신이 미약한 삶이 치르는 세계대전 같은 것은 아닐까. 오늘도 귀찮음은 천하를 통일하겠다는 기세로 존재의 구석구석ㅇ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기 귀찮은 나머지 그는 오랫동안 단련해온 의지력이라는 군대를 파병한다. 잘 싸워다오. 그래서 오늘 하루도 내가 사람 꼴을 하고 살게 해다오.
P43
조선 후기의 문장가 연암 박지원은 명론이라는 에세이에서 말했다. "무릇 천하의 재앙 중에서 담백하게 욕심이 없는 상태보다 더 참담한 것은 없다" 박지원이 보기에 전쟁, 지진, 홍수, 판데믹, 호환, 마마보다 참담한 재앙이란 바로 담담하게 욕심이 없는 상태다. 다 귀찮아 하는 상태다.
천하는 텅 빈 그릇. 그릇을 유지하는 것은 이름. 이름을 유도하는 것은 욕심. 사람들이 귀찮은 나머지 아무것도 안 하다가 멸종하는 사태를 막으려면, 사람들의 욕망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뭔가 해보고 싶은 욕망. 우리는 흔히 욕망을 부정적인 것으로 간주하는데 익숙하지만, 사실 욕망이 없다면 이 세계는 텅 비어버리고 말 것이다. 그릇은 해체되고 말 것이다. 사람들은 꼼짝하지 않고 누워 있다가 멸종되고 말 것이다. 욕심이 있어야 인생이 있고, 인생이 있어야 욕심이 있다.
P48
썩어가는 멧돼지의 머리와 들끊는 파리들이야말로 <파리 대왕>의 내용을 압축하는 강렬한 이미지다. 파리떼처럼 자극에 반응하는 군집 상태만으로는 정치 공동체를 만들 수 없다. 성숙한 정치 공동체를 형성할 능력이 없는 파리떼는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소수자를 찾아 나선다. 소수자를 악마화하고 공격하는 동안 그들은 자신들의 진짜 문제를 잊을 수 있다.
P49
외부로의 연결과 소통을 유지하는 것이 정치 공동체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 핵심적이다. 그리고 인간의 선의에만 너무 의존하는 것도 현명하지 않다. 현실의 인간은 언제 어떻게 폭력적인 존재로 타락할지 모른다. 그 타락을 막을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P59
하드파워 : 강제적인 수단을 통해 상대에게 영향을 끼치는 역량.
소프트파워 : 비강제적인 수단을 통해 상대에게 영향을 끼치는 역량
P74
세상은 악업과 고통으로 가득하고, 삶은 종종 불쾌하다.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필요하다.오스트리아의 작자 로베르트 무질이 그랬던가, 삶은 불쾌하므로, 담배를 피워야 견딜 수 있다고. 비흡연자들도 희망이라는 이름의 구름과자가 없으면 삶은 견디기 어렵다. 흡연자들이 주기적으로 담배 연기를 삼키듯이, 비흡연자들도 간헐적으로 희망이라는 구름을 삼킨다. 스스로 삼킨 희망에 디대어 사람들은 또 하루를 살아간다. 희망이라는 허구가 없었다면 오늘 또 하루가 갔다는 평범한 우울감을 견디지 못했을지 모른다.
P123
톰은 어느 것에도 몰입하지 않기 때문에 거리를 둘 수 있고, 모든 일에 거리를 두기에 전체를 볼 수 있다. 몰입하지 않는 이가 치러야 할 대가가 있다. 모두 기뻐 날뛸 때 뒤로 물러나 그 장면을 찍어야 하는 촬영기사처럼, 그는 상황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그는 어떤 상황에도 몰입하지 않기 때문에 몰입이 주는 쾌감을 누릴 수 없다. 그는 모든 야단법석에 함께하되 그 이루가 되지 않고 늘 거리를 두면서 상황 전체를 생각한다. 게임에 참여하되 게임의 룰과 시작과 끝을 생각한다. 그는 행동하는 자라기보다는 생각하는 자다. 그래서일까, 영화 내내 톰은 어떤 우울에 잠겨 있다.
P124
위대한 리더 톰은 모자를 좇지 않고 바라보기만 한다. 르네 마그리트의 필그림에서처럼, 그와 모자는 분리되어 있다. 모자라는 욕망을 좇고 있지 않기 때문에, 목전의 상황에 함몰되지 않고 전체를 볼 수 있다. 전체를 볼 수 있는 시선, 이것이야말로 리더의 핵심 자질이다. 전체를 볼 수 있는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특정 욕망에 함몰되어서는 안 되고 대상과 늘 거리를 유지해야만 한다. 모자를 사랑하지만 모자를 좇아서는 안된다. 그에게는 몰입의 쾌감 대신 아득한 피로와 슬픔이 있다. 그것이 전체를 생각하는 리더가 치러야 하는 대가다.
P178
전염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수호성인 로코는 순례자였다…로코는 전염병으로 신음하는 이들을 발견하고 순례를 잠시 멈춘다. 병자들을 돕다가 전염병에 걸리고, 그 역시 병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이 된다…로코의 전염병은 나았으나, 후유증으로 인해 외모가 크게 변하고 만다. 사람들은 그를 적국의 간첩으로 오인하여 감옥에 가둔다. 로코는 전염병 때문이 아니라 감옥에서 갇혀서 죽는다. 죽고 나서야 그가 로코였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서로 그의 시신을 자기네 도시에 모시려고 다툼을 시작한다.
P183 영화 미나리
아칸소로의 이주는 일종의 배수진인 셈이다. 그러나 수영을 할 줄 아는 사람의 배수진과 할 줄 모르는 사람의 배수진은 다르다. 아이들을 건사하면서 하는 병아리 감별과 농장 경영은 버겁기 짝이 없고 그 버거움을 견디기 위해 신앙에 의지해보지만, 그 역시 만만치 않다. 마침내 그들을 돕기 위해 한국에서 할머니가 온다. 적응이 어렵다는 이국땅이건만, 어디든 잘 적응하는 여러해살이 품 미나리처럼 할머니는 개의치 않고 짐을 바리바리 챙겨서 온다…미나리를 심은 계속에서 뱀을 발견한 손주에게 할머니는 말한다. 저렇게 자신을 드러낸 것은 무섭지 않다고. 무서운 건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그렇다. 보이는 것이 있고,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표층이 있고 심층이 있다. 표면이 있고 저류가 있다. 보이지 않던 것은 어느 날 예상치 않게 표면으로 떠올라 사람을 놀라게 한다. 그것이 바로 삶의 아이러니다.
P185
그러나 선의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낳지 않는 법, 그것이 삶의 아이러니다. 가족에게 도움이 되고자 쓰레기를 모아 태우다가 그만 할머니는 그해의 결심이 모여 있는 창고에 불을 내고 만다. 뇌졸중으로 몸을 빨리 움직일 수 없어서 불타는 창고를 망연히 보고 있어야만 한다.
삶에 아이러니가 존재한다는 말은 우리가 우리 행동의 결과를 다 통제할 수 없다는 뜻이다.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고, 의도하지 않았던 일이 발생한다…아이러니로 가득한 이 삶을 통제할 수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영화 미나리는 "버티라"고 말한다. 미나리는 버티는 식물의 대명사다. 실로, 삶에 아이러니가 있다는 것이 꼭 나쁜 일만은 아니다. 아이러니가 있기에 희망도 있다. 생각하지 못했던 불행이 있는 만큼 예상치 못했던 선물도 있다…나쁜 일만 있는게 삶이라면 삶은 예측 가능하리라. 삶은 예측 가능하지 않기에, 좋은 일도 있다. 삶의 아이러니는 좌절할 이유도 되지만 버틸 이유도 된다.
P210
여전히 태어나는 일은 자신의 선택이 아니다. 태어나 이 세상의 무대에 올라가는 것은 출생자의 의지와 무관하다. 마치 고깃집 불판 위에 올라가는 일이 삼겹살의 동의 여부와 무관한 것처럼. 인간은 '낳음을 당해서' 살아간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존재에게 왜 사느냐고 묻는 것은 다소 실례다. 시시포스에게 왜 돌을 굴리느냐고 묻는 것이 실례이듯이. 그런 질문을 받으면 시시포스의 기분이 아빠서라기보다 돌을 굴리는 일은 운명이고, 운명을 반복하다 보면 별 생각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시시포스에게 2세를 낳아기르겠냐고 묻는 건 사정이 다르다. 그건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시시포스는 새삼 자문한다. 과연 이 땅의 삶은 아이에게 권할 만한 것인가. 바로 이 근본 질문을 정부 당국자는 애써회피한다…전통보다는 개인의 동의 여부가 규범의 기초가 되었다.자식의 성취가 아니라 자신의 성취가 인생의 성패를 결정짓게 되었다…삶의 근본적인 부조리함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선택일 수도 있고,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신 만나지 말자는 선언일 수도 있고, 열악한 삶의 조건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배려일 수도 있고, 자기 인생을 더 자유롭게 누려보겠다는 판단일 수도 있고, 불공정한 사회에서 육아를 하지 않겠다는 거부일 수도 있다.
[느낀점]
17쪽에서 20쪽까지의 정치에 대한 정의를 읽으면서 이 책 과연 다 읽을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생겼다.
기억에 남는 것은 119쪽 '위대한 리더는 좇지 않고 바라본다.'와 182쪽 '식물이 질주한다 이다.'
1) 위대한 리더는 좇지 않고 바라본다에서는 영화 <밀러스 크로싱>의 모자와 르네 마그리트의 <필그림> 속 모자를 연관지어서 이야기한다. 가끔 필그림의 모자를 볼 때 어떤 의미 인지 궁금했는데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특정 욕망(모자)을 좇지 않고 전체를 생각해야 진정한 리더라고 말한다.
2) 식물이 질주한다에서는 영화 <미나리>를 통해 삶은 아이러니 기 때문에 나쁜 일도 좋은 일도 예측할 수 없다고 한다. 또 그렇기에 희망을 가질 수 있으니 '버텨라'라고 이야기 한다.
내가 좋아하는 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데, 살면서 있는 많은 일들에 일희일비 하지않고 모자를 좇지 않는 리더처럼 전체를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미나리처럼 버티는 삶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느껴져서 좋았다.
'내 책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믿는 인간에 대하여 (0) | 2023.04.13 |
---|---|
순례주택 (0) | 2023.03.09 |
우리, 편하게 말해요 (0) | 2022.12.07 |
채식주의자 - 읽는중 (0) | 2022.12.07 |
소년이 온다 - 읽는중 (0) | 2022.1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