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40 그는 평생 귀찮음과 싸워왔다. 망연하게 창문 너머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학생들은 그가 무슨 심오한 학술적 사색에 잠겨 있는 줄 안다. 그렇지 않다. 귀찮음과 싸우고 있을 뿐이다. 귀찮음과의 한판 승부, 그건 심신이 미약한 삶이 치르는 세계대전 같은 것은 아닐까. 오늘도 귀찮음은 천하를 통일하겠다는 기세로 존재의 구석구석ㅇ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기 귀찮은 나머지 그는 오랫동안 단련해온 의지력이라는 군대를 파병한다. 잘 싸워다오. 그래서 오늘 하루도 내가 사람 꼴을 하고 살게 해다오. P43 조선 후기의 문장가 연암 박지원은 명론이라는 에세이에서 말했다. "무릇 천하의 재앙 중에서 담백하게 욕심이 없는 상태보다 더 참담한 것은 없다" 박지원이 보기에 전쟁, 지진, 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