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인간에 대하여
P10
오늘의 아픔과 절망을 바꿀 수 있는 내일이 있다면 인간은 그 아픔과 고통이 아무리 크더라도 그것을 견디고 넘어설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마치 기록적 폭염을 맞고 있다고 해도 곧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과 함께 청명한 가을이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혹독하게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고 해도 봄은 어김없이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가 그 시간을 버티고 견딜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 인간은 희망이 있기에 살아갈 수 있는 것이라고 이해되었다. 나는 종교가 없고, 종교를 이해하지도 못하지만 누군가는 종교에서 희망을 얻는 것일까?
01. 생각의 어른을 찾다
P26 <나의 아저씨>를 보며, 나 역시도 다른 사람들처럼 나에게도 저런 어른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것은 바란다고 되는 것이 아니기에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잊고 있던 기억이 글을 통해 떠올랐고 어떻게 하면 어른이 될 수 있을지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P28-29 오늘날 우리 사회가 바라는 생각의 어른은 진심으로 누군가의 곁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04. 예수를 배신한 두 사람, 베드로와 유다의 차이
실패와 마주할 수 있는 힘
일상에서 맞닥뜨린 대부분의 실패는 나의 선택에서 비롯된 것일 때가 더 많았습니다.
모든 문제 해결은 마주하기 싫은 것을 마주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렇게 보기 싫은 것을 마주해 나가는 것이 삶의 여정이며 일상의 진보가 아닐까 합니다.
이제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주어야 할 유산은, 한 번에 잃을 수도 있는 많은 돈이 아니라 실패의 시간을 버티고 살아갈 수 있는 건강한 태도와 정서일 것입니다. 실패를 마주할 수 있는 용기와 그것을 바라볼 수 있는 힘도 포함입니다. 그것을 해낸 사람은 자기가 약해졌을 때 오히려 강해질 수 있음을, 멈춰 섰을 때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음을 알게 될 것 입니다.
05.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P77 하지만 부모님을 비롯해 어느 누구든 자기가 무엇을 어떻게 하고자 마음먹고 행한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은 제가 '할 수 없는 일'에 속했습니다. 저는 그 앞에서 '그럼 나는 그저 불평만 하는 사람으로 남을 것이가?'자문하게 됐습니다. 제가 그 질문에 내놓은 답은 '그저 나의 일상을 살자. 불평과 탄식은 이 순간 나에게 필요없는 일이니 한숨과 함께 날려 보내자'였습니다.
이렇게 아주 단순하게 시작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구분은 내적 성찰을 거듭해가면서 '식별'이라는 지혜로 남았고,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 힘으로 불필요한 감정을 덜어 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여전히 제가 맞닥뜨리는 문제들 앞에서 차가운 이성으로 좀 더 명확히 제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해 나가면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가치있는 존재이고 어제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오늘도, 내일도 그렇게 잘 걸어갈 수 있습니다. 나의 한숨이 웃음으로 바뀌는 그날까지 길 위에서 멈춰 머무르지 않고 계속해서 걸어가기. 이것이 제가 선택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가슴 속에 무엇을 품든 우선 우리는 살아가야 하고 그 과정에서 때론 많은 것은 한숨으로 날려보내야 합니다. 그 한 숨이 내 속에 계속 남아 자꾸 작아지는 나의 모습을 보지 않으려면 말이지요.
[느낀점]
종교로 시작되는 이야기에 내가 과연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고 온갖 종교에 대한 부정적인 뉴스들이 떠올랐다.
중간 즈음까지 읽었을 때는 내가 먼저 어른이 되어 누군가에게 곁을 내 줄 수 있는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구별하여 마음을 잡고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 등 내가 바라는 삶에 대해 적힌 글을 보고 종교의 긍정적인 모습은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94쪽의 페니키아의 여인에 대한 성경이야기는..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다시 4번 읽었다..이 즈음부터해서 급격하게 집중력을 잃었다… 역시..